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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일을 하다 쏟아지는 눈꺼풀을 이길 수가 없어 제자의 권유에 눈을 감았었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한 심청추가 쓱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물건, 익숙한 광경이 가득한 이곳은 제 처소가 분명했으나 딱 하나.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무척이나 말이 되지 않는 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사존, 일어나셨어요?”

 맑은 음성이 도록 방 안을 굴렀다. 심청추는 여전히 눈만 끔벅이며 제게 말을 거는 이를 바라보았다.

 

흰 옷을 차려입고 화병을 든 어린 낙빙하라니-

 “꿈?”

 그래. 이게 꿈이 아니면 말이 되지 않지. 어린 빙하라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장성한 빙하와-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붉게 달아오르려는 얼굴에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이 뒤를 이은 탓이었다.

 “사존? 혹시 아직도 불편하신 겁니까? 이 제자가 얼른 약을 받아올까요?”

 울상인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어리고 울망한 구슬 같은 눈동자를 한 백목련의 아이를 보자 심장이 급격히 뛰었다.

 부드러울 것 같은 머리카락과 빛이 반사되어 보석을 가득 담은 것 같은 눈동자가 눈물을 살짝 머금은 모습이라니-

 부들거리던 그의 손이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빙하의 머리에 올라가 제멋대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아차 한 심청추가 급히 손을 떼려 했으나 이내 느껴지는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시스템이 울리질 않았다. 분명 이때쯤이면
캐릭터에 맞지 않는다 ooc가 어쩐다 해서 시끄러워야 했는데?

 그럼 진짜 꿈인가?

 “사존, 어찌 대답이 없으십니까.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이 제자가 얼른 다녀올 테니 제발 대답해주세요.”

 제 머리에 올라간 손 때문에 잠시 굳어있던 하얀 손이 안절부절못한 모양새로 흔들렸다. 그 모양새대로 심청추의 눈도 흔들흔들
움직였다. 고양이가 장난감을 노리는 모양새였으나 그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이의 머리 위에 올라갔던 손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움직였다.

 덥석, 쥐어진 하얀 손이 파르르 떨렸다.

 “사, 사존?”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가 귀를 파고듦에도 심청추의 손은 멈추질 못했다. 조물조물 진흙으로 모형을 만들 듯 섬세한 손길이 아이의 얇고 하얀 손가락부터 한 손에 들어올 만큼 가냘픈 손목까지 거침없이 누볐다.

 백련목의 아이, 낙빙하의 목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스승의 밑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살아오며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손길이 낙빙하의 마음을 간질거리게 함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베베 꼬이는 손가락을 애써 진정시키며 제 손에
집중한 스승의 눈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반짝임이 가득 담긴 푸르른 눈동자는 햇빛을 머금어 반짝이는 옥과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의 시선이
제 손에 박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포만감을 느낌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배부른 것 같은 거지?

 낙빙하의 손을 잡아 정신을 놓은 채 한참을 쪼물거리던 심청추가 번뜩 든 정신에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얼굴까지
붉어진 제 제자가 그의 시선을 피해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 하얀 얼굴을 물들인 불그스름한 빛의 홍조에 다시 정신을 놓을 뻔했으나 안간힘을 다해 이성을 잡아챈 심청추가 심호흡을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손을 놓았다.

 “그, 미안, 하구나. 내 이제 막 일어난 참이라 정신이-”

 “괜, 괜찮습니다. 사존. 몸이 불편하신 것이 아니라면 이 제자 손 정도는 얼마든지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놓인 손과 살랑살랑 머리를 흔들며 말하는 낙빙하를 다시 멍하니 바라보던 심청추는 다시 화들짝 놀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시스템이 없으니 행동이 통제가 되질 않았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낙빙하를 귀여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날뛰려는 걸 이성으로만 누르려니 고삐가 쉬이 쥐어지질 않아 속으로 한창 진땀을 빼는 중이었다.

 그렇게 조용한 침묵만 방안을 구를 때, 한참 말없이 눈을 굴리던 낙빙하가 한쪽에 내려두었던 화병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사존, 꽃이 너무 예쁘게 피었기에 제자가 사존께 보여드리려고 화병에 담아왔습니다.”

 낙빙하의 말에 본능과 싸우던 심청추가 고개를 돌렸다. 하얀 백자화병에 소담하게 피어있는 꽃들이 보이자 부채를 들어 입가를
가리며 살풋 미소를 지었다. 꼭 저 같은 꽃만 담아왔구나.

 몸을 일으켜 화병을 잡아들었다. 그를 본 낙빙하가 안절부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예쁘구나. 혹 꺾어온 것이냐?”

 “아닙니다. 바닥에 떨어진 꽃들 중에 아직 생생하고 화사한 것들만 골라온 것입니다.”

 “그래. 잘하였다. 식물도 함부로 꺾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니.”

 천천히 다가간 그가 낙빙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시금 쓰다듬음을 받은 낙빙하의 두 눈이 어쩔 줄 모름으로 가득 차 세차게
흔들렸다. 오늘, 오늘 사존이 왜 이러시는 거지? 아직 편찮으신 건가?

 저도 모르게 낙빙하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는 것을 알아챈 심청추가 아차 하며 당황한 얼굴로 손을 떼려 했다.

그 손을 잡는 작은 온기만 아니었다면.

 제 손을 조심히, 그러나 꼭 잡아 오는 작은 온기에 심청추의 눈은 커다랗게 뜨였다. 얼굴이 붉은 매화보다 더 붉게 물들어 찌르면
꽃물이 똑 떨어질 것 같은 낙빙하가 맑게 빛나는 눈을 여기저기 굴리며 심청추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빙하?”

 “그, 음, 그것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절대 손을 놓지 않는 행색에 심청추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어릴 적의 빙하는 이러했지.
지금처럼 뻔뻔함의 극치인 놈이 아니라 부끄러워하면서도 귀여운 백목련 같은 아이였지. 마음이 포근해짐에 심청추가
낙빙하의머리를 톡톡 토닥였다.

 “그래, 손을 떼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 한마디가 정답이었는지 화하게 밝아지는 표정이 꽤나 귀여운 모습에 심청추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빙하야. 사존이 이리하는 것이 기분 나쁘지는 않느냐?”

 “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제자는 오히려 좋은걸요.”

 그러하느냐? 심청추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부드럽다는 것을 금방 알아챈 빙하가 말갛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지만 오늘은 제가 뭘 하든 사존이 기분 좋게 받아줄 것이라는 것을 알아챈 까닭이었다. 

 “그, 사존. 혹시 제자와 함께 잠시 나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음?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게로구나.”

 낙빙하의 머리카락이 몇 차례 들썩였다. 그 풍성한 머리카락을 눈으로 쓰다듬던 심청추가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며 제자의 손을
잡았다. 그럼 날이 저물기 전에 다녀오는 게 좋겠어. 사존의 말에 낙빙하가 눈을 반짝이며 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제자가 오늘 꽃을 가져오다 좋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좋은 곳이라. 얼마나 좋은 곳이기에 이리 서두를까.”

 “엄청, 엄청 좋은 곳입니다.”

 이 제자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맑은 웃음과 함께 손을 꼭 잡은 낙빙하의 종종걸음을 따라 걷자 청량한 대나무 숲이 이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 모든 아름다움이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눈으로 보이는 이것을 대체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색색의 꽃잎들과 생기 가득한 모습으로 피어난 가지각색의 꽃들. 그 사이사이를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과 수줍은 날갯짓을 하는 나비들.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을 품 안 가득 끌어안고 있는 맑고 맑은 호수.

 이것이 있다는 서술은 향천타비기의 소설 그 어디에도 없었기에 심청추가 알 수 없었던 청정봉의 숨겨진 명소를 사존에게 꽃을
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돌아다니던 낙빙하가 발견한 것이었다.

 이것도 주인공이기 때문인 건가-

 제가 잡고 있는 손을 슬쩍 내려다본 심청추가 다시 그 아름다운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어느 새 손을 놓고 꽃밭 한가운데 선
낙빙하가 말간 두 눈으로 심청추를 담아내고 있었다.

 태양이 저물어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가는 오후, 하루 그 어느 때보다 붉게 물든 해를 등지고 아름다운 꽃밭 가운데 서서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한 떨기 꽃같은 자태로 바라보는 빙하, 낙빙하. 꿈에서 깨도 저리 웃어줄, 연인.

 어린 낙빙하의 미소가 심청추의 가슴을 톡 치고 지나갔다. 저도 모르게 붉어진 귓불을 조용히 만지던 그는 그의 제자가 기다리고 있는 꽃밭으로 걸어 들어갔다. 꽃향기 가득한 그곳에 있는 어린 제자는 제 눈엔 독이었다.

 심청추는 몸을 숙여 작은 낙빙하를 끌어안았다. 꿈이지만, 그래도 이리 환하게 웃을 줄 알았던 낙빙하를 혼자 무섭고, 외로울 곳에 보냈었다는 사실은 내내 심청추의 마음 한편을 무겁게 하던 일이었다.

 어, 어? 당황함이 가득 묻어나는 어린 제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그를 안고, 또 안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빙하야.”

 “네, 사존.”

 “혹, 내가 네게 다정하지 않은 것이 힘들 때가 있느냐?”

 어린 빙하가 고개를 저었다. 제 사존은 절대 이유 없이 그럴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확고한 믿음으로 인한 행동이었다.
그 모습이 한 번 더 심청추의 가슴을 톡 하고 치고 지나갔다.

 이리 작고 착한 아이가 그곳에 떨어져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원망했을까.

 이미 커버린 낙빙하에겐 아무리 물어도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 침묵은 그게 어딘가 남아있을 원망 때문은 아닐까 하고 심청추는 때때로 생각했다.

 왠지 모르게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시스템이 없으니 행동이 절제되질 않는데 이젠 감정까지 마음껏 뛰노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번 어린 제 제자를 꼭 끌어안은 심청추가 살짝 잠겼을 목을 가다듬으며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잠시의 정적 후 순식간에
붉어져 버리는 얼굴에 작은 웃음을 흘리며 이리저리 어지럽게 흔들리는 낙빙하의 눈과 눈을 마주했다.

 “빙하야. 혹, 이 이후 내가 너를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다하여 서운해 하지 말거라.”

 “서, 서운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만약. 내가 너를 혼자 둔다면-”

 몸을 일으키고 말을 이으려던 심청추가 부채 뒤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후의 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이유 모를 확신이
들었던 탓이었다.

 “아니, 아니다. 시장하진 않느냐? 아름다운 것을 보여줬으니 오늘은 이 사존이 네게 진미를 대접해주마.”

 “네? 사존, 제자는 괜찮습니다!”

 붉어진 얼굴을 채 수습하지 못한 채로 두 손을 마구 휘젓는 낙빙하에 심청추가 피식 웃으며 손을 잡고 그를 이끌었다.
그의 어린 제자는 어느 때든 귀여울 뿐이었다.

 

 

 “-존, 사존?”

 어렴풋이 들리는 목소리에 심청추가 부스스 눈을 떴다. 낙빙하가 환히 웃으며 심청추를 반겼다.

 “사존. 저녁을 드셔야 할 것 같아 깨웠습니다. 배고프시지는 않으십니까?”

 “저녁? 저녁이라면 방금 먹고 왔지 않느냐.”

 네? 제자는 방금까지 부엌에 있다오는 길입니다. 누구와 다녀오신 겁니까? 점점 음산해지는 것 같은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
화들짝 놀란 심청추가 두 손을 흔들었다.

 “아니, 아니다. 사존이 착각을 하였구나.”

 “착각이라면 누구와 착각했다는 것입니까?”

 분명 웃는 것이 분명하나 웃는 것이 아닌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드는 표정에 심청추가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어릴 적이긴 하나,
너다. 이놈아.

 “사존. 어서 말해주세요. 대체 누구와 착각한 것입니까?”

 이젠 한쪽 팔로 허리를 휘감은 채 물어오는 모습에 위험함을 감지한 심청추가 급히 그의 머리를 부채로 내리쳤다.

 “어릴 적의 너이니라! 너에게 마저 질투할 생각이더냐?”

 “어릴 적의 저,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이제 그만하거라. 이 팔, 팔 좀 치워두고.”

 손가락으로 팔을 콕콕 쑤셔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빙하에 심청추가 한숨을 쉬었다. 점점 힘이 더 들어가는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어릴 적의 저라는 놈과 저녁을 드셨단 말입니까? 혹 그때 그놈인 것은!”

 “씁, 너는 이 사존을 바보로 보는 것이냐? 내가 그놈과 너를 구분하지 못하는 천치로 보이는 것이야?”

 그건 아니지만! 불만스러움이 가득 담긴 낙빙하의 표정에 심청추가 한숨을 쉬더니 두 볼을 잡아 눈을 마주했다.

 “어릴 적의 너였다. 예쁜 짓을 하기에 함께 저녁을 했지.”

 “예쁜 짓이라면?”

 “예쁜 꽃이 가득한 호숫가를 보여주더구나.”

 심청추의 말에 낙빙하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뭔가 알겠다는 듯 오묘해지는 표정에 심청추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러지?

 “사존. 혹시 여러 색의 꽃이 가득한 호숫가였습니까? 대나무 길을 쭉 따라 걸어가면 나오는?”

 “응? 그렇다만, 네가 어찌 아는 것이냐?”

 씩 웃은 낙빙하가 심청추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제자와 어딜 좀 가셔야겠습니다.

 낙빙하의 말에 연신 고개를 갸웃하던 심청추는 걸음을 옮겼다.

 기쁨 가득한 얼굴로 신나게 걸음을 옮기는 제 제자가 의아해 여러 차례 물었으나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더 묻기를 포기한 그는 조용히 손을 맞잡고 제자의 걸음에 발을 맞추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보이는 풍경이 꿈에서 본 대나무 길과 똑같은 것에 어라? 하던 심청추는 이내 드러나는 꽃밭에 입을 떡 벌렸다.
그곳이었다. 꿈에서 봤던 어린 빙하가 꽃같이 웃던 그 곳.

 “혹 사존의 꿈에 나온 곳이 이 곳 맞습니까?”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 목이 탁 막혀 말을 뱉어내지 못하던 심청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꿈에서 본 곳과 조금도 달라짐 없이 이번엔 져가는 해를 머금은 노을이 아닌 하늘에 박힌 별들이 총총 빛을 내는 하늘을 가득 담은 채 그곳에 그저 있는 호숫가.

그것을 그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낙빙하가 보기만 해도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사존께서 기억에서 지워내신 줄 알았습니다.”

 낙빙하의 한 마디가 멍하던 심청추의 정신을 깨웠다.

 그게, 그게 꿈이 아니었다고? 속으로 경악함을 가득 담은 단말마를 내지르면서도 부채로 얼굴을 가려 어색하게 굳은 입가를
보이지 않던 심청추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켜갔다.

 “그럼,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네게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구나.”

 “네, 그날 제자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사존께서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볼에 입맞춤을 해주시고, 안아주시는 덕분에 처음으로 탄일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보석을 가득 박은 듯 반짝이며 제 기쁨을 알리는 낙빙하의 눈동자를 유심히 본 심청추가 잡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아당겨 눈가에 입을 맞췄다.

 “그럼 앞으로는 많이 해주도록 하마. 네 탄일이 아니더라도.”

 대신 다른 제자들 앞이나 봉주들 앞에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그 뒤를 잇는 심청추의 말을 듣는 것인지 듣지 않는 것인지
그저 손으로 눈가를 매만지며 베실 웃던 낙빙하가 부채를 든 심청추의 손까지 잡아내며 눈을 마주했다.

 “사존, 제자가 잠시 사존께 실례를 범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실례라니, 무슨?”

 심청추의 말이 끝나기 전 낙빙하가 고개를 숙였다.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에 잠시 멍하던 심청추의 얼굴이 서서히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심청추의 볼에 다시 입을 맞춘 낙빙하가 눈을 휘어 웃었다.

 “그 시절의 저같이 아주 붉게 달아오르셨습니다. 사존.”

 그대로 품에 안고 도망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아쉽다는 듯 혀를 차는 낙빙하에 파득 놀라 몸을 움찔한 심청추가 부채로
머리를 내리쳤다.

 “그 무슨 말도 안되는 망언을 하고 있느냐. 그리고 이런 것은 말을 하고 하거라!”

 “하하, 하지만 사존. 미리 말하면 사존의 이런 얼굴을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빙긋 웃는 낙빙하에 심청추가 한숨을 쉬며 맞잡은 손에 다시 힘을 줬다. 그 움직임에 다시 빙긋 웃던 낙빙하가 심청추를 안아
올렸다.

 분명 키가 그리 다르지 않음에도 들려올라가는 제 몸에 심청추의 눈이 지금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과 같이 동그랗게 변했다.

 “사존, 제자는 아직 그때 이 꽃밭에서 해줬던 말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뒤에 이어서 하지 않은
말씀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빙하야-”

 “제가 자세히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사존의 그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니까. 너무 자세히 묻지는 말아주세요.
이 제자는그걸 물어보시는 사존이 제일 무섭습니다.”

 “허나, 내가 너를 그곳에 밀어 넣은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

 “하지만 사존. 그리하지 않으셨다면 그 뒤의 일들을 분명 감당할 수 없었을 겁니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럴 것이라는 확실을
할 수 있어요.”

 조곤조곤 말해오는 그 목소리에 심청추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 그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춘 낙빙하가 그대로 꽃밭에 주저앉아 심청추를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어찌 되었던, 저는 지금이 아주 좋습니다. 그때로 돌아가도 다시 그곳에 떨어져도 저는 사존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런 생각은 그만하세요. 사존.”

 한숨을 쉰 심청추가 제 어깨에 얼굴을 묻은 낙빙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릴 때와 똑같은 감촉인 그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보드랍고 편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조심히 심청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에 고개를 든 낙빙하가 심청추의 얼굴 이곳저곳에 연신 입을 맞췄다. 장난기와 애정이 가득 담긴 행동에 심청추가
다시 붉어지려는 얼굴을 애써 식혔다.

그런 둘을 감싼 호숫가는 여전히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빙하야. 그 꽃은 무엇이었느냐?”

 “무슨 꽃 말씀이십니까?”

 “그 날 네가 화병에 꽂아 온 꽃 말이다.”

 “아, 그것이 안정봉 봉주께서 사존의 생일에 맞는 탄생화라며 알려주신 꽃입니다. 제자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지만요.”

 “탄생화?”

 “예. 이름이 분명 사프란? 샤프란?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저에게 꼭 기억하라며 알려주신 꽃말이 후회 없는 청춘, 기다리는 기쁨, 즐거움, 환희였습니다. 제자는 그 중에 기다리는 기쁨이라는 꽃말이 제일 좋았습니다.”

 “기다리는 기쁨?”

 “예. 기다림 뒤엔 항상 사존이 계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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